제로. 건강한 정신과 그 정신이 담길 몸을 매일 수련한다.

제로제로.그 누구도 우위에 있지 않고 그 누구도 틀릴 수 없다.

제로일. 다름을 수용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제로이.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다름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

첫째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둘째 예술은 무엇이다고 규정하는 순간을 송촐하되 그 규정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해야한다.

셋째 예술창작물은 만드는 사람, 보는 사람, 사는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 감각적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

넷째 예술창작물을 제작하는 원천은 '구성원으로서의 나'여야 한다.

다섯째 '구성원으로서의 나'에 대한 질문을 멈춰선 안된다.

여섯째 '구성원으로서의 나'에 대한 규정을 송출하되 그 규정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해야 한다.

일곱째 장르적 예술은 메세지 전달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는 수단이다.

여덟째 낯선 표현 방식에 대한 학습을 주기적으로 해야한다.

아홉째 창작물을 만든 의도나 만들면서의 과정이 얼만큼 전달이 되어지는지 확인해야한다.

열째 소통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인지 소통하고 싶지 않아 잘 숨긴 것인지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솔직히 고백해야한다.

<aside> 🚧 2016년 가을, 동료들과 예술의 기능(function of functionlessness)에 관한 대화를 자주 나누었습니다. 공공은 무엇이며, 예술은 무엇인지, 우리의 활동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술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묵묵히 공공을 위한 길을 걷는 이들에 관한 대화였습니다. 예술인으로 신자유주의 세상을 체험하고 관찰하며 키워낸 사유를 예술언어로 표현해 공감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동료 예술인들의 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 동료들 덕분에 미술사에 기록된 예술활동가들을 알게 되었고 혁명과 변화를 이끈 역동적인 예술의 여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술을 통한 전복의 현장이 증거하는 정의의 공공,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에너지에 매료되어 지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시기에 접한 예술인들과 다양한 현장들이 ‘프리블릭 아트’의 출발점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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